오늘은 사도요한이 지적한 본문 15절중의 「이 세상」이란 말에 대하여 주로 요한의 경우를 중심하여 상고하고자 합니다.
一. 「이 세상」이란 말의 의미
1. 창조 세계를 뜻하는 말입니다. 요한은 「…창세 전」 혹은 「창세전부터」(요17:5,24)라고 했습니다. 위의 두 말들은 곧 ‘세상이 있기 전’이란 말입니다. 그러므로 「이 세상」이란 말은 하나님의 창조성을 띄고 있는 유한한 피조 세계, 곧 우주 만유를 가리킵니다. 2. 인류를 의미합니다. 「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…」(요 3:16)라고 했습니다. 여기서 「이 세상」은 이성적인 존재인 인간계를 의미합니다. 곧 지(知), 정(情), 의(意)의 인격적 생활을 하고 있는 인류를 가리켜 「세상」이라고 했습니다. 3. 좀 더 강한 의미는 악의 영역과 성분들을 가리킵니다. 오늘 본문 15~17절의 경우와 같이 순전히 세속적이고 무신론적이요 유물론적인 악의 영역 곧 어둠의 영역을 가리켜서 「세상」이라고 한 것입니다. 어떤 악의 영역일까? ①하나님과 정반대되는 영역을 말합니다. 다시 말해서 여기 「이 세상」이란 하나님의 나라에 반대되는 성격의 것입니다.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지 않는 영역은 악의 영역입니다. ②아버지를 모르는 곳입니다. 요한은 「의로우신 아버지여,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…」(요17:25)라고 했습니다. 여기의 ‘몰랐다’는 말의 뜻은 이해력이 부족해서 인식하지 못했다는 지성의 문제라기보다는 마음이 완악해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의지의 문제의 것입니다. 이것이야말로 불행의 영역이요 어둠의 영역입니다. ③그리스도를 미워하는 곳입니다. 주님의 제자들에게 「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로 알라」(요15:18)고 하셨습니다. 십자가는 세상의 악덕이 얼마만큼 큰가를 보여 줍니다. 죄악의 결과가 얼마만큼 비참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진리입니다. 예수를 미워하고 죽이지 못하면 견딜 수 없는 생리를 가진 세상인 것입니다. ④사단에게 소속된 영역입니다. 우리 성경은 사단을 「이 세상 임금」(요12:31,14:30,16:11)이라고 했습니다.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인데(요8:33-36) 어둠은 이 세상 임금의 지령을 받는 자들입니다. 소속 근거가 다릅니다. ⑤성령을 받지 못한 세계입니다. 요한은 「…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」(요14:17)고 했습니다. 진리의 영(성령)이 없는 인간세계는 캄캄입니다. 어둡고 답답하고 숨 막히는 곳입니다. 성령이 오시면 이 세상에 대하여 선고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. 죄의 온상이요 악의 영역인 이 세상이 타작마당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성에 지극히 당연한 이치입니다.
二. 「이 세상」에 대한 사도의 권면
사도는 본문 15절에서 「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」고 했습니다.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. 1. 신자는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. 즉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. 주님도 「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」(마6:24)고 한 경우와 같습니다. 성도의 마음에 그리스도와 벨리알을 같이 섬길 수 없습니다(고후6:14). 사랑은 항상 독점적입니다. 사랑을 두 곳으로 나누어 놓을 수 없습니다. 전부가 오고 전부가 가는 것입니다. 하나님의 사랑은 전부가 왔습니다. 그러므로 그 사랑의 반응도 전부가 가야 합니다. 2. 이 세상의 것들이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. 본문 16절에 「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」고 했습니다. 그 내용은 ①육신의 정욕입니다. 이것은 단순한 이성작용만을 가리킴이 아니고 부패한 죄악성이 충동하는 모든 육체적인 추태를 이름인데 영적인 것에 전적으로 대립 내지는 반대되는 것입니다. 곧 생리적인 욕구가 아니라 죄악적인 욕망을 뜻합니다. 그것은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(갈5:16-21). 이것들은 마귀로부터 온 것입니다. 이것들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머물 수가 없는 것입니다. ②안목의 정욕입니다. 이는 눈의 기관을 통하여 외계의 모든 헛된 영광들에 도취되어 탐하게 되는 허욕을 뜻합니다.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영이십니다. 육체의 눈으로 보이는 대로만 살려는 생활철학은 하나님의 사랑에 도전하고 맙니다. ③이생의 자랑입니다. 이것은 무상한 이 세상의 것들을 높이고 과장함을 이름인데 내용이 텅텅 빈 이 세상의 소유물들을 자기 것 인양 가장해서 남에게 보이려고 자랑하는 것을 말합니다. 우리는 3가지 허세를 삼가야 합니다. 있는 체, 잘난 체, 아는 체하는 것입니다. 이렇게 이 세상이 육체의 욕망대로 사물을 판단하고 내용 없는 겉치레로 허풍을 떨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마귀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입니다. 이것이 에덴의 아담이 받은 시험이요 광야에서 마귀가 주님께 던진 시험이었습니다. 3. 지나가고 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. 본문 17절에 「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」라고 했습니다. 지나가는 것은 땅의 것들입니다. 그림자입니다. 바람입니다. 안개입니다.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현세에서 끝없이 지나만 갑니다.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란 말입니다. 그것들은 지나가 버려야 합니다. 그래야 주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.
사랑하는 성도 여러분!
믿을 수 없는 것들을 믿는 일만큼 기막힌 일이 없습니다.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만큼 미련하고 위험스런 불장난은 없습니다. 그 모든 결과는 비참이요 허무요 공포입니다. 그러나 우리가 이 같은 진리를 오해해서는 안됩니다. 곧 세상의 모든 것은 일체 포기하고 신앙생활에만 전무하라는 뜻은 아닙니다. 다만 주어진 환경에 충실하되 그 모든 목적을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그 영광을 위해 하라는 것입니다. 주님은 세상에 사는 제자들에게 「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」(마10:16)고 하셨습니다.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바른 생활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. -아멘-
|